3세기 중반 이후 ‘마한-목지국’의 소멸과정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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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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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심, 전게서.
그러나 주구묘는 고분의 분구 주위에 도랑을 파는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고 옹관묘란 옹관을 매장주체시설로 쓰는 묘제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교의 차원이 다르다. 단지 막연한 추측에 의하여 충남에서 전남 일대의 유적, 유물들을 그 지엽적인 공통점에 근거하여 마한-목지국의 것으로 규정하고 본질적인 차이점을 무시해 온 것이 현실이다. 최몽룡, 전게서, pp. 4~5.
그러나 옹관묘는 충남 직산일대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따 다만 전남 서부의 영산강유역에 가장 밀도있게 분포하고 있으며 최근 전북 서부일부지역에서 그 초기형태가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유물은 충남 이남지역에 이르는 공통된 묘제로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러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옹관묘의 분구주위에 주구시설을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 뿐인데 이 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마한의 공통적인 묘제라고 한다면 그 범주는 마한에 한정된 것이 아닌 日本 열도의 주구묘에까지 확장시켜 적용할 수도 있는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 상게서.
그러한 예들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논박해 보기로 하겠다. 강봉룡, 전게서.
두 번째는 묘제에 나타나는 主構의 흔적들을 마한지역에 공통적인 묘제로 보려는 견해가 있따 주구묘의 양식은 서해안을 따라 충청, 전북 서부의 일부지역과 전남서부(영산강 유역), 그리고 日本 열도 등지에서 주로 확인된다 김영심은 이러한 주구묘의 전통이 영산강 일대의 옹관묘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최몽룡이 주장한대로 800여년의 마한사를 설정하고 마한-목지국이 전남 영산강 유역으로 점차 남하하여 세력을 이루었다면 적어도 충남에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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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최몽룡이 주장한대로 800여년의 마한사를 설정하고 마한-목지국이 전남 영산강 유역으로 점차 남하하여 세력을 이루었다면 적어도 충남에서 전... , 3세기 중반 이후 ‘마한-목지국’의 소멸과정 고찰인문사회레포트 ,
우선 최몽룡이 주장한대로 800여년의 마한사를 설정하고 마한-목지국이 전남 영산강 유역으로 점차 남하하여 세력을 이루었다면 적어도 충남에서 전남네 이르는 지역에서 정치·문화적 정체성과 계승성을 확인할 만한 유물이 발견되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겨지는 유물리 발견되어야 한다. 강봉룡, 전게서.
그외에도 토기에 시문된 鳥足文의 흔적이나 주거지의 양식등에서 까지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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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중반 이후 ‘마한-목지국’의 소멸과정 고찰
다. 첫 번째로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유물인 옹관묘는 그동안 마한-목지국의 최종 흔적으로 파악해 왔다.